요즘 인후염이 심하게 도져 영 상태가 좋지 못하다. 당장 오늘 오후 과학관에서 강연이 하나 있는데, 코는 막히고 목은 아프고 어찌되든 성대에 힘 빡 주고 최대한 멀쩡한 척 프로페셔널하게 하긴 해야겠지만, 이 정도면 차라리 COVID여서 격리하며 일정 취소하는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도 싶다. 요즘은 여러모로 고민이 많은데,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정리하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 정말 오랜만에 최근 Death 앨범들을 하나씩 꺼내 듣고 있다. Leprosy, Human, Symbolic, 그리고 여기 남기는 The sound of perseverance까지. 당연히 이들의 음반 중 명작이 아닌 것이 없고, 천재는 요절한다는 만고불변의 클리셰처럼 세상을 떠난 척 슐디너의 대체 불가능한 능력은 들을 때마다 소름돋게 한다. Deathmetal 자체의 원류가 그 이름처럼 Death인 것만으로도 이미 메탈씬 전체에 대한 파급력은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가 아닐까. 기타보컬로 이 정도로 부를 수 있는 것도 경이롭지만, 그로울링과 묵직한 데스이던 초기 앨범보다, 이들의 유작이라 할 수 있는 본 앨범에서는 척 슐디너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아져서인지 스크리밍 위주로 프로그레시브함이 진득하니 묻어나온다. 아마 더 오랜 기간 생존했다면, 후기 데스 음악은 프록데스메탈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혹자는 본연의 색으로 꾸준히, 한결같은 음악을 하길 바란다. 연구도, 저서도, 그림도 무엇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방향을 추구함은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런 면에서 자신의 분야에서 하고 싶은 것에 도달한 이후에는 그만두고 싶거나 차갑게 식어버리기도 한다. 요즘 쓰던 책은 몇 차례의 수정과 피드백, 회의와 검토를 거치며 더이상 나는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고 쓰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오히려 파일을 열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두는 순간부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의욕도 생겨나지 않는다. 버티며 나아갈지, 여기서 그만둘지 선택이 필요하다. 사실 메탈 음악을 가사까지 챙겨보며 듣는 사람이 그리 흔치는 않겠지만 (오히려 국내 소멸하다시피한 메탈씬에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다 챙겨보긴 할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잘 쓰였고 매력적인 가사는 메탈갓 Judas Priest의 Painkiller라 생각한다. 주다스의 페인킬러가 소위 장난삼이 일컫는 '진통제'라면 (실제 가사는 고통의 종결자라는 뉘앙스가 크다) 데스의 페인킬러는 흡사 스타크래프트에서 해병이 빨며 달려나가 총을 난사하는 스팀팩과 같은 '강화개량진통제' 정도의 느낌이 아닐까. 빡빡한 오늘 하루도 진통제 하나 빨고 시원하게 달려본다 |